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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up) here>, 나무, 물, 드라이아이스, 빔프로젝터, 가변크기,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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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해리

Haeri Lim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것을 다룬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상태”와 "결국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태”의 차이에 집중한다. 모든 것은 존재했다가 사라진다. 궁극적으로 삶도 결국은 죽음을 통해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된다.

그리고 모두가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모든 것이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태에 이르고, 존재했던 것들은 모두 아무 의미가 없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현재 존재하는 것에 최선을 다한다.

10개월의 시간동안 런던에 머물며 친구 두 명을 만났다. 특정한 순간 내 삶에 등장해서 귀국하는 순간 감쪽같이 사라졌다. 나에게 일상이었던 매일 보던 친구들의 행동, 습관등을 담은 영상을 프로젝터로 재생한다. 영상 속에 친구들은 그때의 기억과 다르지 않게 무언가를 적거나 그리기도 하고,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말을 걸어오기도 한다.

수조에 드라이아이스를 넣어 연기를 만들고 그 위에 영상을 매핑한다. 무언가를 보존하는 역할을 하는 드라이아이스 위에 기억하고 있던, 행복한 과거의 상태를 영사하는 것은 그것이 사라지지 않게 오래 보존하고 싶은 마음이 담겨있기도 하다. 하지만, 보존하는 과정에서 연기는 결국 영상을 왜곡시킬 수 밖에 없고, 현상을 있는 그대로 비추지 못한다.

연기가 만들어지고 소멸되는 한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벽에다가 친구들의 모습을 그린다. 다음날 아침 드로잉을 하얀색 페인트로 덮는다. 그리고 오후에 연기가 나오는 동안 그 위에 또다시 드로잉을 한다. 이 과정을 전시기간 6일동안 반복한다. 전시가 끝난 후 벽에 있는 그림은 하얀색 페인트에 완전히 덮여 흔적도 찾아볼 수 없게 되어 전시장의 벽과 하나가 된다. 다음날이 되면 페인트에 덮여 흐려지고, 결국은 흔적도 남지 않고 다시 하얀 벽이 되어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앎에도 불구하고 매일 짧은 순간, 존재했던 과거를 회상하는, 수행적이고 일시적인 퍼포먼스를 반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