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비단에 분채, 금분, 220x280cm, 2024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비단에 분채, 금분, 220x280cm, 2024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채영

Woo Chaiyoung

이 여정은 내 정체성의 본질은 기억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내 기억력은 예리하지 않아서 수많은 순간을 쉽게 뒤로 남겨두곤 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남겨진 기억들은 대단히 불행하고 위대한 사건이 아닌 작고 조용한 순간들이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해 보일 수 있는 이 섬세한 파편들은 나를 불안정하게 만들기도 하고 때론 옭죄기도 한다. 나는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여전히 외면하고, 마치 그것들이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회피한다. 이 조용한 긴장감은 알 수 없는 해방감을 준다. 꿈처럼 자유롭게 놓인 모습으로 기억의 모자이크를 다시 하나의 화면 속에 수놓는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나와 상처를 주고받은 대상들이 등장한다. 금붕어, 얼음조각, 염증은 조금씩 모양이 변형된 채 화면 안에 뒤섞여 유영한다. 7살이 되던 해, 나는 키우던 물고기를 하수구에 빠트려 죽였다. 11살이 되던 해에는 따돌림을 당하던 친구가 던진 얼음 결정에 맞아서 다쳤다. 25살이 된 해에는 이유도 모르게 대장에 구멍이 뚫렸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들은 나에게 일말의 예고 없이 다가와 서로의 흔적이 되었다. 

 화면 속을 구상하고 있는 작업 대상물의 의미보다도 그들과 함께 만들어내는 미적인 형태에 더 많은 마음을 둔다. 애틋한 마음으로 대상을 향해 진심으로 손길을 이어가는 행위는 그 자체의 의미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물감이 비단에 머무르며 형태의 패턴을 만들어 나가는 방식은 단순히 기억의 결론을 내리거나 무언가를 극복하고자 하는 태도가 아니다. 그 기억을 온전히 되새기고 현재의 나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마음가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