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Couple of


A Couple of
박근정
Geunjung Park
@jpegeun
‘회화’라기엔 자연스럽지 못하며, 제멋대로 그어진 듯한 모호한 선은 형상의 재현이라기보다는 시각 언어의 기호에 가깝다. 단어를 연결해서 문장을 만들어내듯, 기호를 조합하며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각 기호가 어떤 선으로 표현되는지, 어떤 크기로 자리하는지, 그리고 다른 기호들과의 위치 관계에 따라 수많은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기호는 화면을 구성하는 단위로 작용한다.
이 기호의 생성과 조합의 과정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디지털 프로그램은 드래그 한 번으로 기호의 배치를 바꾸어보고 클릭 한 번으로 기호를 지워버릴 수도 있는 넓게 펼쳐진 실험의 공간이다. 기호들이 캔버스로 옮겨질 때의 실수를 최소화하기 위한 엄격한 설계실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디지털 프로그램으로 그려진 기호들은 입력값을 제대로 출력하지 못하는 오류가 발생한 것처럼 선이 일그러져 있다. 이런 선의 흔들림은 디지털 상에서도 마치 붓 자국과 같은 우연한 조형성이 발생할 수 있음을 드러내는 신호다. 이 흔들리는 선은 캔버스로 옮겨지면서 마우스를 쥔 손의 떨림이 아니라 붓의 떨림을 연기하며, 디지털과 아날로그 두 레이어를 병합하는 역할을 한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구분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이미지의 조율 과정은 디지털의 선과 색이 가진 매끄럽고 납작한 가상의 물질성이 캔버스 위에서 물감을 통해 실재로서의 물질성을 획득하며 종결된다. 투박한 검은 선은 캔버스 위에서 흘러내리고, 붓에 눌려 짓이겨지고, 다른 색의 물감과 뒤섞이며 결국 캔버스의 표면에 달라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