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 Come Hard Go






Hard Come Hard Go
김혜리
Kim Hyeri
55victoria@naver.com
광목 천의 씨실과 날실 사이로 콘테와 파스텔 가루가 배어들며, 후면의 화면 위에 옅은 물감층이 나타난다. 흐릿한 이미지의 잔상은 아지랑이처럼 떠오른다. 화면 위에 스며든 것은 느린 시간의 궤적이다. 광목 천 위를 찰필로 꾹꾹 눌러 가루가 자리 잡도록 하는 이 되새김질 같은 움직임 속에서, 시간이 남긴 흔적은 희미할지언정 형상을 간직하고 있다. 점점 더 빠르게 생성되고 쉬이 사라지는 세상 속에서, 나는 굳이 느리고 흐리고 또 고된 방식으로, 지나가는 것들의 미세한 흔적을 붙잡아 두고자 한다. 마치 차를 우려내듯, 한 번 더 돌이키며 다듬는 그 고요한 시간 속에서 비로소 뚜렷해지는 순간들이 있다.